<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냉장고 시 모음 -김영탁/안오일/이재무/유정이/이진/서안나/오유정/강연호/홍일표

냉장고 여자 김영탁 그녀가 내 집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는 결혼식도 안 하고 간편하게 동거했다 그녀는 지상의 태양들을 가져온 내 식탐을 나무라지 않고, 차가운 인내심으로 잘 받아주었다 홀아비가 처녀를 데리고 산다고 주변의 지인들은 손가락질하며 입방아를 찧으며 쑥덕거렸..

뻐꾸기 시 모음 -함민복/최윤근/김명원/김성규/복효근/도종환/장석남/이문재/유재영/손세실리아/박기섭/이정훈

뻐꾸기 함민복 저 목소리 들어봐선 아닌 것 같다 저리 곱고 깊은 소리 눈빛처럼 다급하게 알을 낳았으리라 염치머리 없다고 미안 미안하다고 울어 울어도 죄 가시지 않는다고 이 산 저 산에 무릎 꿇는 울음 메아리 ㅡ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2013) --------------- 뻐꾸기 최윤..

늦게 온 소포/고두현 - 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박상률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장석주 -대추 한 알/냉이꽃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 대추 한 알 ― 장..

어떤 관료/김남주 - 관료/박성규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

정운희 - 아들의 방/아들의 여자

아들의 방 정운희 문은 고통 없이 잠겨 있다 가장자리부터 녹슬어가는 숨결을 품고 있는지 언젠가 제 몸이 녹의 일부가 되기까지 더 많은 악몽을 배설해야 한다 느닷없이 선반 위 유리컵이 떨어지듯이 느닷없이 손목을 긋고 욕조에 몸을 담그듯이 그곳에서 분노와 상처를 해결하고 녹을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김행숙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

무지개 시 모음 -워즈워드/이홍섭/임영조/김진경/최승호/허영자/박제천

무지개 윌리엄 워즈워드 무지개를 하늘에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 설렌다. 내 생애가 시작될 때 그러하였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래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바라기는 내 목숨의 하루하루여 천성의 자비로써 맺어..

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 벚꽃 문식/박경희 - 아버지의 소/이상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

장석주 - 한 알/냉이꽃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경종호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서울 지하철 시』. 4호선 노원역)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