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최승호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7.04.20
조개의 꿈/김추인 조개의 꿈 김추인 갯모래 머금은 혓바닥 하나 몸을 삼으니 석화된 입이 무기다 발바닥 생을 숨긴 집이다 만입이 다 열려 있어도 ​ 묵黙 묵黙 적寂 묵黙 ​ 어느 전생의 세치 혀가 불러온 업보인지 딱딱한 입술 두 쪽에 혓바닥 하나 숨겨 생애를 건너가는 중이다 물속에..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7.03.24
자화상/최금녀 -수정 자화상 최금녀 기생이 되려다 못된 년들이 글을 쓴다는 김동리 선생님의 말씀으로 화끈 달아오르는 내 얼굴, 그 말씀에 주를 달아준 분은 더운 차 한 잔을 밀어놓고 사라지며 "끼가 있다는 뜻"이란다 그렇다 느지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는데 선무당 사람잡는 소리가 등을 훑어..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11.22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홍일표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 홍일표 집주인의 양육법이 궁금하다 태생이 다른 농경과 유목의 혈통 방금 전 냉장고가 삼킨 것은 생선 몇 마리 그중 한 마리가 고양이 입속으로 들어간다 생선이나 육류를 좋아하는 식성이 닮았다 냉장고와 고양이는 아픈 기억 탓인지 긴 꼬리를 등 뒤에 감추고..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06.29
기울어짐에 대하여/문숙 기울어짐에 대하여 문숙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자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보란다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다 노처녀였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짝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것도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06.17
비 냄새/유안나 비 냄새 유안나 저수지가 여자를 밀어내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엎어진 여자를 누군가 바로 누이자 귀와 코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잠깐 구름 사이로 햇빛이 넘어왔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어두운 햇살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과 이마를 가렸다 누군가와 은밀한 대화를..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06.03
봄볕을 두드리다/고명자 봄볕을 두드리다 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 등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줌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에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04.20
어머니/최문자 최문자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 따라 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블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6.03.28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이름을 지운다 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5.12.01
폐광촌 언덕에서 /정일남 폐광촌 언덕에서 정일남 1970년 반공포로 윤달주는 선산부 머슴 강민석은 후산부 전과자 배남준은 착암기 운전공 사상범 김민수는 유탄공 축첩 공무원 정연석은 갱목 운반공 나는 다이너마이트를 메고 다닌 발파공이었다 이들은 나의 생사를 같이한 길벗들이었지 캄캄한 막장에서 해바..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201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