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 윤성택 주유소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시를♠읽고 -수필 2014.09.29
장마 / 김사인 장마 김사인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묵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 시를♠읽고 -수필 2014.09.29
철새 / 감태준 /원시 / 임성용의 아내가 운다 - 노래 김성만 철새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 시를♠읽고 -수필 2014.08.16
밥 / 장석주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 시를♠읽고 -수필 2014.08.16
돈 워리 비 해피 / 권혁웅 Bobby McFerrin - Don't Worry Be Happy 돈 워리 비 해피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 시를♠읽고 -수필 2014.08.16
각축 / 문인수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 시를♠읽고 -수필 2014.07.29
대추 한 알 / 장석주 (서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집『붉디 붉은.. 시를♠읽고 -수필 2014.07.29
다시, 묵비 / 최명란 다시, 묵비 최명란 이승의 일 저승 가서도 고자질 마라 당장 잡혀갈 놈 수두룩하다 저승 가면 어떤 일도 말하지 말라고 아무 것도 일러주지 말라고 그들은 솜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말 날까봐 소리 새어 나올까봐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막았다 나는 죽었다 증거 인멸을 위하여 내 주검 속.. 시를♠읽고 -수필 2014.07.15
외도 / 오명선 외도 오명선 섬을 만나러 홀로 집을 나선다 오랜만의 외박이다 배낭에 담긴 설렘은 자꾸 부풀어 오르고 바람마저 푸르다 뱃길에서 만난 기암괴석의 절벽은 천년송과 눈이 맞아 바람을 버틴다 파도는 철썩 병풍바위 미륵바위와 찰떡궁합이고 수평선은 물새와 가마우지들의 울음소리만 .. 시를♠읽고 -수필 2014.07.05
겨울 바다의 화두 / 박창기 겨울 바다의 화두 박창기 겨울 바다의 화두 책 좀 읽으라신다 파도책을 펼치면서 수천 권의 시집을 던지면서 제대로 된 시 한 편 쓰라신다 부끄럽다 받은 시집을 펼치면 바다보다 더 넓은데 해변에서 어휘만 줍고 있다 시 한 줄 연결 못해 전전긍긍이다 독기 품은 시 한 편 쓰려면 파도처.. 시를♠읽고 -수필 201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