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과 가족 사이 / 이희섭 가득과 가족 사이 이희섭 아내와 여행을 가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길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가득이세요' 라는 말이 '가족이세요?' 라는 말로 들리는 순간 가득과 가족 사이에서 잠시 묘연해진다 가득이라는 것은 바닥난 속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도 서로의 .. 시를♠읽고 -수필 2012.09.28
밤 바닷가에서 / 송경동 밤 바닷가에서 송경동 밤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파도가 철썩철썩인다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말한다 이 밤에도 돌고 있는 라인이 있다고 파도가 겹겹이 밀려든다 나는 이제 모른다 모른다 한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파도가 내 가슴을 냅다 후려쳐버린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 시를♠읽고 -수필 2012.09.24
금붕어의 건망증 / 오명선 금붕어의 건망증 오명선 질문이 건너가기도 전에 눈빛이 마음에 닿기도 전에 나의 문장은 너에게 읽히지 못하고 사라졌다 너의 공식에 의하면 내 기억력은 딱 3초 기억이 녹스는 시간을 너는 일방적으로 요약하고 결론 짓는다 소유권은 너에게 있지만 내 기억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내뿜.. 시를♠읽고 -수필 2012.09.19
도서관은 없다 / 최금진 도서관은 없다 최금진 도서관 의자들이 모두 일어나 반란군처럼 밖으로 뛰쳐나가고 취업을 위해 앉아 있던 의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서관 의자들과 한바탕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실업의 인간들이여 투항하라 실업은 도서관장님이 해결할 몫이 아니다 세상은 봄이어서 여기저기 개나.. 시를♠읽고 -수필 2012.09.15
웃은 죄 / 김동환 웃은 죄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신세기》(1938. 3)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1938. 3 <신세기>에 실린 시입니다. 참 오.. 시를♠읽고 -수필 2012.09.13
잃어버린 열쇠 / 장옥관 잃어버린 열쇠 장옥관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풀밭에 버려진 녹슨 열쇠 누가 이 초록을 열어보려 했던 것일까 누가 이 봉쇄수도원을 두드렸을까 차가운 촛농으로 잠근 오래된 사원 수런수런 연둣빛 입술들이 피워 올리는 기도문 개미들이 땅과 하늘을 꿰매고 있다 아, 저기 호두껍질을 뒤.. 시를♠읽고 -수필 2012.09.08
우체국 계단 / 김충규 우체국 계단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 시를♠읽고 -수필 2012.09.01
자벌레 / 이상인 자벌레 이상인 산행 중에 자벌레 한 마리 바지에 붙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는 연초록 자 자꾸 내 키를 재보며 올라오는데 가끔씩 고갤 좌우로 흔든다. 그는 지금 내 세월의 깊이를 재고 있거나 다 드러난 오장육부를 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끈질기게 자라나는 사랑이나 .. 시를♠읽고 -수필 2012.08.30
이런 이유 / 김선우 이런 이유 김선우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앤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 시를♠읽고 -수필 2012.08.27
[권순진] 개별 경제학 개별 경제학 권순진 입맛 당기고 호기심도 당기는 점심특선 웰빙비빔밥 정가가 육천 원이라… 잠시 망설이다 사천 원짜리 그냥 비빔밥으로 낙찰을 본다 문자 받고 가야되나 말아도 되나 머리 굴리다가 찾은 고등학교 동창 초상집에 미리 준비해간 부의금 삼만 원 다른 녀석은 대개 오만 .. 시를♠읽고 -수필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