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훔쳤다-시래기 한 움큼/공광규 그리움을 훔쳤다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경찰서까지 끌려 갔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시멘트 담벼락에 매달린 시래기를 한 움큼 빼어 냄새를 맡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 시를♠읽고 -수필 2011.09.28
흔들릴 때마다 한 잔/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甘泰俊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독하게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죽은 참새를 굽고 있다, 한놈은 너.. 시를♠읽고 -수필 2011.08.16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김성규 외 3편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김성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 시를♠읽고 -수필 2011.08.16
여게가 도솔천인가/문성해 여게가 도솔천인가/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 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 시를♠읽고 -수필 2011.07.21
동질(同質)/조은 동질(同質)/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 지금 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 말이 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 시를♠읽고 -수필 2011.07.08
1920년 인기 시인 노자영 시 세 편, 1950년 인기 시인 공중인 시 두 편 버들피리/노자영 기름같이 흐르는 봄 물의 강가에 버들가지 나부낀다. 버들가지 꺾어 쥐고 봄 물의 소리에 장단을 맞춰 호도록 호도록 피리나 불까. 썩어진 내 손을 어디다 씻으랴 흐르는 봄 물에 온 몸을 잠그고 피리나 불며 울어나 보지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2011-07-05 / .. 시를♠읽고 -수필 2011.07.05
현장검증/홍정순 현장검증/홍정순 그가 다녀간 것 같다 없는 나를 다행히 여겼을지도 모를 일 딱히 뭘 살 일도 없이 가게에 들러 날 분명히 찾지도 못하고 족대나 하나 사갔다는 그,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남편이 눈치챘듯 배신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을 골랐다는 것을 감 잡았을지도 모.. 시를♠읽고 -수필 2011.05.28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며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 시를♠읽고 -수필 2011.05.28
낙타와 상인 1/한길수 낙타와 상인 1/한길수 남대문 상가에서 지게 품팔이 하던 남자 폼 나게 살겠다고 처자식 데리고 건너 온 미국 주말 땡볕 공터에다 천막치고 신발 펼친다 이국인의 눈에도, 그의 눈에도 짚은 눈썹의 낙타 닳아 빠진 신발 벗겨내자 땀에 젖은 이십 불짜리 코 잡고 찡그리자 흰 이 드러내며 내미는 손 오징.. 시를♠읽고 -수필 2011.05.28
운우지정(雲雨之情)/이선이 운우지정(雲雨之情)/이선이 뒤꼍에서 서로의 똥구멍을 핥아주는 개를 보면 개는 개지 싶다가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란 저리 더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마음도 미끄러진다 평생 바람처럼 활달하셔서 평지풍파로 일가(一家)를 이루셨지만 그 바람이 몸에 들어서는 온종일 마룻.. 시를♠읽고 -수필 201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