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구] 김씨 김씨 임희구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 시를♠읽고 -수필 2012.08.20
시치미떼기 / 최승호 시치미떼기 최승호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오더니 철쭉꽃을 뚝, 뚝 꺾어간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불행한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가래침들을 피해 길을 가고 어떻게 .. 시를♠읽고 -수필 2012.05.11
앵두 / 고영민 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버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는 것 같고, 투정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쉥, 하고 가로 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든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시를♠읽고 -수필 2012.04.19
이 별의 일 / 심보선 이 별의 일 심보선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2011) 2행,3행, 4행을 다 버리고 '아 별의 일' 시 제목과 1행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 시를♠읽고 -수필 2012.04.03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 반칠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 시를♠읽고 -수필 2012.03.28
앵두나무 밑에서 잠을 깬 개가 / 이예미 앵두나무 밑에서 잠을 깬 개가 이예미 운치리* 어느쯤의 강기슭으로 나가--->어디쯤? 붉은 혀끝으로 동강 몇 방울 흘린다 한 때 나는 그 강을 닮은 한 사내를 만났었다---->한때 노을들이 강으로 이끌려가듯 나의 가슴도 그에게 끌려가 붉어진 적이 있었다 모든 게 그 강 때문이.. 시를♠읽고 -수필 2012.01.05
그 고요에 드난살다 / 오태환 그 고요에 드난살다 오태환 고요에 드난사는 건 나뿐이 아니지 싶다 곰비임비 헛발질이나 하면서, 순흘림체로 물색 없이 지저귀어 쌓는 무너밋골 소쩍새도 매한가지다 잘 마른 유기鍮器나 마불링이 근사한 꽃등심, 아니면 화려한 진사辰砂 때깔로 숨어 지내다가, 생각나면 닻별.. 시를♠읽고 -수필 2011.12.24
몸살 / 이재무 몸살 이재무 면역 생기지 않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기와 사랑 그리고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 같은 집착 등속 저만큼 밀어내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스며들어와 생활을 물고 흔든다 지천명 코앞에 두고 찾아온 바이러스 벼르고 왔는지 가난한 집에 들린 식객처.. 시를♠읽고 -수필 2011.12.12
불멸의 새가 울다 / 진란 불멸의 새가 울다 진란 언어의 새들이 붉은 심장 속에 둥지를 틀다 관념의 깃털을 뽑아 깔고 그 위에 씨알을 품었다 쓸쓸한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간 밤 어지러운 선잠에 들려올려지는 새벽, 어디선가는 푸른 환청이 들렸다 꽃-피-요 꽃-피요 -시집『혼자 노는 숲』(나.. 시를♠읽고 -수필 2011.11.28
색소폰 부는 걸인/최명란 색소폰 부는 걸인/최명란 북한산에 가면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가난하지 않은 내가 가난한 너를 잊어버릴 때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으로 간다 도봉산역에 내려 천천히 김수영 시비가 서 있는 북한산 입구로 걸어가면 등 굽은 소나무 아래 날마다 색소폰을 부는 걸인 사내가 앉아 있다 목발을 .. 시를♠읽고 -수필 201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