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한 잔/甘泰俊 흔들릴 때마다 한 잔/甘泰俊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독하게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죽은 참새를 굽고 있다, 한놈은 너.. 시를♠읽고 -수필 2011.04.12
쑥국/최영철 쑥국/최영철 -아내에게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시를♠읽고 -수필 2011.03.07
춘설/유금옥 춘설/유금옥 이 고장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봄도 치우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 요양 온 나는 그리움을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대관령 산비탈 작은 오두막 여기서 내려다보면, 눈 내린 마을이 하얀 도화지 한 장 같습니다 낡은 함석집들의 테두리와 우체국 마당의 자전거가 스케치.. 시를♠읽고 -수필 2011.02.12
메주콩 삶는 날/고재종 메주콩 삶는 날/고재종 하루 종일을 메주콩 삶는 날이라면 좋겠지요. 가마솥 가득 이글이글 장작불 메워, 너와 나는 날콩 내 나는 신경전도 삶았 으면 좋겠지요. 좀먹은 여투리콩 같은 나날도 삶고, 굵디굵은 눈물콩도 푹푹 삶았으면 좋겠지요. 한번 어긋나니 노상 빗나 가는 정분일랑은, 삶은 콩과 함.. 시를♠읽고 -수필 2011.01.30
하늘의 옷감 / W.B. 예이츠 하늘의 옷감 / W.B. 예이츠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옷감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과 낮의 밝음과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색의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밖에 없으니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즈려.. 시를♠읽고 -수필 2011.01.21
엑스트라/김지송 엑스트라/김지송 유리 밖, 아스팔트에 빛살 긋는 자동차들 자오록한 땅안개가 꿈결인 양 뒤척이는 설 깨인 새벽 여섯시, 소리 삼킨 버스 안 리허설 없는 연극, 제 일 막이 올라갔어 가슴 벽 느루 스미는 헤즐넛 향기처럼 살그래 벼랑 끝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어 겹치기 출연에도 보이지 않는 빼곡한 .. 시를♠읽고 -수필 2010.12.09
다국적 똥/ 반칠환 다국적 똥/ 반칠환 또 배탈이군. 한때 돌조차 삭이던 위장이었는데. 그렇지, 장모가 전라도 배추를 경상도 고춧가루로 버무린 탓일 거야. 아냐, 맥도널드 햄버거에 우리 밀빵을 함께 먹은 탓인지도 몰라. 아니, 방부제와 잔류 농약이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방제하는 날일까? 쯔쯧, 세계화 시대에 이렇.. 시를♠읽고 -수필 2010.12.05
참! / 김미혜 참! / 김미혜 "이거 진짜예요?" 엄마는 참기름 살 때 꼭 물어보아요. 참깨,참쑥,참취,참꽃,참나무,참나물, 참숯,참빗,참나리,참비름,참개암나무, 참새,참게,참매미,참개구리,참다람쥐, 참당나귀,참치,참붕어,참조기,참가자미, 참말,참뜻,참사랑,참소리,참값...... "참"이란 뜻을 가진 낱말이 이렇게 많은데 .. 시를♠읽고 -수필 2010.10.15
모기/김형영 모기/김형영 모기들은 날면서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온몸으로 소리를 친다 여름밤 내내 저기, 위험한 짐승들 사이에서 모기들은 끝없이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살기 위해 소리를 친다 어둠을 헤매며 더러는 맞아 죽고 더러는 피하면서 모기들은 죽으면서도 소리를 친다 죽음은 곧 사는 길인 듯이 모기.. 시를♠읽고 -수필 2010.10.07
하늘연인/김백겸 하늘연인/김백겸 아무 생각도 없이 만년 잠을 자고 있다고 믿은 바위의 틈 속으로도 무엇인가 뱀처럼 구멍을 파고든다 느티나무아래 평화롭게 언덕이 누워있고 시냇물이 흐르던 마을에서도 어떤 위험한 사건이 방화처럼 발생한다 무엇인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에 샘물처럼 콸콸 터져 흐르더니 .. 시를♠읽고 -수필 201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