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 시를♠읽고 -수필 2010.09.09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고정희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고정희 무릇 너희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듭나리라, 수수께끼를 주신 하느님, 우리 가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 핵 무기고에서 나오는 살인능력 보유자와 우리들 밥줄을 틀어진 자를 구세주로 받드는 오늘날 .. 시를♠읽고 -수필 2010.09.07
조장鳥葬/김선태 조장鳥葬/김선태 티벳트의 드넓은 평원에 가서 한 사십 대 여인의 조장을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려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잘게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 시를♠읽고 -수필 2010.08.31
손목/윤제림 손목/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 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 시를♠읽고 -수필 2010.08.28
야트막한 사랑/강형철 야트막한 사랑/강형철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언덕 위의 사랑 아니라 태산준령 고매한 사랑 아니라 갸우듬한 어깨 서로의 키를 재며 경계도 없이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웃음으로 넉넉한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사랑 아니라 개운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랑 아니.. 시를♠읽고 -수필 2010.08.27
시 비빔밥/김금용 시 비빔밥/김금용 프라이팬에 물 한 잔 놓고 점심을 먹는다 창틈으로 비껴드는 바람밖엔 숨 쉬고 재잘거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모두가 죽은 오후 세 시 반에 이승훈시인의 비빔밥 시론을 베껴 먹는다 전기압력밥통에서 식혜가 되어가는 잡곡밥과 기제사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 된장국물과 김치 .. 시를♠읽고 -수필 2010.08.24
겨울 바다의 화두 / 박창기 겨울 바다의 화두 / 박창기 겨울 바다의 화두 책 좀 읽으라신다 파도책을 펼치면서 수천 권의 시집을 던지면서 제대로 된 시 한 편 쓰라신다 부끄럽다 받은 시집을 펼치면 바다보다 더 넓은데 해변에서 어휘만 줍고 있다 시 한 줄 연결 못해 전전긍긍이다 독기 품은 시 한 편 쓰려면 파도처럼 부서져야 .. 시를♠읽고 -수필 2010.08.20
쑥국 -아내에게 / 최영철 쑥국/최영철 -아내에게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 긁었음 합니다 그.. 시를♠읽고 -수필 2010.08.16
다시, 묵비 /최명란 다시, 묵비 /최명란 이승의 일 저승 가서도 고자질 마라 당장 잡혀갈 놈 수두룩하다 저승 가면 어떤 일도 말하지 말라고 아무 것도 일러주지 말라고 그들은 솜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말 날까봐 소리 새어 나올까봐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막았다 나는 죽었다 증거 인멸을 위하여 내 주검 속.. 시를♠읽고 -수필 2010.08.14
돈 워리 비 해피 / 권혁웅 돈 워리 비 해피 /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시를♠읽고 -수필 201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