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편지는 내 징검다리 첫 돌이었다 어릴 적엔 동네 할머니들 대필로 편지를 썼고 고향 떠난 뒤로는 아버님께 용돈 부쳐드리며 "제 걱정 마세요" 편지를 썼다 매일 밤 내 동생 인자에게 편지를 썼고 두레에게도 편지를 썼다 시인이 되고부터는 책 보내온 문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3
문맹/유홍준 문맹/유홍준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 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같다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無化의 길 …… 더둑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직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3
남해 금산/이성복 남해 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그리운 시냇가/장석남 그리운 시냇가/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리 못하리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이유가 있다/남혜숙 이유가 있다/남혜숙 꽃이 피어나는 순간 꽃도 아프다 새가 우는 동안 새도 아프다 돌이 자라는 동안 돌도 아프다 누구나 이 세상에 와서 하나의 돌도 무엇인가 되고 싶어한다 -시집『여우야 여우야』, (종려나무, 2009.) 2010. 03.30 / 오전 09시 41분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봄비/남진우 봄비/남진우 누가 구름 위에 물항아리를 올려놓았나 조용한 봄날 내 창가를 지나가는 구름 누가 구름 위의 물항아리를 기울여 내 머리맡에 물을 뿌리나 조용한 봄날 오후 내 몸을 덮고 지나가는 빗소리 졸음에 겨운 내 몸 여기저기서 싹트는 추억들 - 시집 『사랑의 어두운 저편』(창비, 2009) 2010. 03.30 /..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고물장수 19-어머이/김창제 고물장수 19-어머이/김창제 살아생전 우리 어머이는 나만 보면 야단이시네 '야 이놈의 자식아, 배운 놈이 고물장수가 뭐꼬' 높은 벼슬은 못해도 민서기는 해야지. 니 얘비얘미 못 배운 게 한인데 이기 뭐꼬. 입을 꺼 안입고 묵을 꺼 안묵고 보리 미상해 니이 키와 날품 팔아 공부시키논께 까장고물쟁이..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개나리/송찬호 개나리/송찬호 노랗게 핀 개나리 단지 앞을 지나던 고물장수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아니, 언제 이렇게 개나리 고물이 많이 폈더냐 봄꽃을 누가 가지 하나하나 세어서 파나 그냥 고철 무게로 달아 넘기면 그만인 것을 -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문학과지성 2010. 03.30 / 아침 08시 50..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남사당/노천명 남사당/노천명 나는 얼굴에 분을 하고 삼단같이 머리를 따 내리는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를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램프 불을 돋은 포장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촌엔 은반..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
푸른 5월 / 노천명 푸른 5월 노천명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201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