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4322

후레자식 -김인욱/오봉옥

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

'짧은 소설'의 가능성

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전쟁은 끝났다.” 그는 독일군에게서 다시 찾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침침한 길을 그는 급히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그의 손을 잡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놀다 가세요? 잘해 드릴게요.”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가로등이 환한 등불 밑으로 왔다. 순간 여인은 “앗!” 하고 부르짖었다. 남자는 무심결에 여인을 등불 아래로 이끌었다. 다음 순간 남자는 여인의 두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은 빛났다. “요안!” 하고 그는 여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허버트 릴리호의 ‘독일군의 선물’이라는 짧은 소설이다. 독일군에 유린된 프랑스군의 가족들이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는 생활상이 심각하게 가슴을 친다. 소설이 짧아지고 있다. 단편보다 ..

동시자료 한국 동시조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 이지엽

한국 동시조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이지엽 (시인, 광주여대 교수) 1 후천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시인들은 성장기 때 대개 어떤 계기가 주어져서 시를 쓰게 됩니다. 큰 깨달음보다는 어찌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 평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아동문학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같은 아동문학의 범주라 할지라도 하위 장르의 속내를 들여다보년 여기에도 엄연히 냄새나는 위계질서가 있고, 시인으로서 마땅이 받을 대접을 못받는 소외그룹이 있습니다. 상업화의 논리가 팽배해 있는 현실 상황 탓이라고 보기에는 신중히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문가 집단이 이미 형성된 동시와는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동시조는 그야말로 어쩡정한 상태에서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강렬..

애완동물 키우기 외 2편 /서유경(2020 시와소금 동시 당선작)

애완동물 키우기 외 2편 서유경 요즘 집에서 일하고 계신 우리 아빠 몸에는 동물들이 착 감겨 있어요 손가락에는 톡 톡 독수리 목에는 거북이가 쭈우욱 아침엔 우리 가족 두 발에 고양이가 딱 달라붙어 있어요 고양이는 원래 안 키웠는데 아래층 이사 온 크아앙 사자 삼촌 코털을 건드리면 안 되거든요 사자 삼촌은 왼손엔 커피 오른손엔 작은 쥐를 쓰다듬으며 밤새 타다다닥 투두두두두 온라인 화상 수업 중에 발 친구가 콩콩 의자 친구가 까딱까딱하는 소리 우리 선생님보다 더 빨리 알아채지요 밤송이 슬쩍 보기만 해도 째려보는 채린이 “뭐 읽는 거야?” 물으면 책 속에 몸을 웅크린다 목공 반 동아리 시간"아얏!"손 찧고 못 튕기는데“남자애가 망치질도 못하니?”쾅 톡톡톡 쾅쾅쾅 내 연필꽂이 틀을 뚝딱 만들어버린 채린이 “고마..

제2회 혜암아동문학상 당선작과 당선소감, 심사평

제2회 혜암아동문학상 당선작과 당선소감, 심사평 오빠 입 속엔 따개비가 산다. 김민경 교통사고로 아랫니 네 개가 빠진 곳 침방울이 찰방거리는 바닷속 동굴에 붙어 살아 오빠가 웃으면 딸각딸각 따라 웃고 웃다가 배꼽이 빠진 따개비가 뭍으로 나올 때도 있어 - 어이쿠 오빠는 얼른 따개비를 잡아 바위에 올려 놓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 혼자 숨어 울 때면 달가닥 달가닥, 따개비들도 소리 내어 울곤 해 따개비야 웃지 않아도 좋아 울지 않아도 좋아 떨어지지 말고 꼬옥 ~ 꼭 오빠 옆에 붙어 있어줘 퇴근 길, 실개천가 벚나무 길을 에돌아 집으로 향합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별과 달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별이, 달이 왜 이지러져 보였는지... 나무에 걸린 별을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오늘 그 별이 저에게 다가왔습..

[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장원〉 고다 -김미경 복닥복닥 걸어온 한 생애를 읽는다 쇠심줄 돋우며 달구지 짊어진 길 뼛속에 돋을새김 한 우직을 풀어낸다 커다란 두 눈으로 세상을 굴리며 변죽 울듯 끓는 바람 쇠귀에 경을 읽고 채찍질 멍에 진 등짝 이골이 다 배겼다 한나절 턱 괴어 시간 함께 고는데 울멍울멍 삭힌 말 그제야 녹는다 말로는 다 뱉지 못한 골수 박힌 저 진국 김미경 1966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사범대학 졸업.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재학중. 2019년 이조년백일장 차상. 2020년 중앙시조백일장 7월 차상. 팔공산 다락헌 회원. 〈차상〉 참깨 밭 -문희원 타닥타닥 울음소리 애타기만 하여라 땅심을 부여잡은 푸른 탯줄 끊어지면 여린 것 강보에 싸여 햇살 세례 받는다 여기는 다산면..

교과서를 아이에게 돌려주자 /이임영

아래 글은 2012년 12월에 국정교과서 국민신문고에 이의 제기한 내용입니다. ----------------------------------------------------------------------------------- 초등 교과서 게재 동시의 문제점 1. 의미 없는 말놀이 동시가 너무 많다. ('리’자로 끝나는 말,시리동동 거미동동, 구리 구리 구리, 배꼽시계, 기린, 전래동요(~께롱) , 돌탑, 거름종이, 콩 한 쪽등) 2. 총 동시 작품 수는 118편인데 작품성이 없는 시가 많이 실렸다. 교과서에 실리는 동시일수록 쉬우면서도 작품성이 있고 완성도가 높은 시를 실어야 함(전면 재검토가 필요함) 3.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임에도 사전에도 없는 작가가 만들어낸 임의적 어휘가 실린 동시가 너무..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권오삼

만남 동시인 권오삼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취재, 정리 : 최현정 ‘동시인’ 하면 떠오르는 아동문학의 ‘어른’이 있다. 1975년 동시로 등단, 아동문학 시장이 싹트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동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시인 권오삼. 수원의 자택으로 찾아가 4시간 가까이 살아온 이야기, 권정생 작가의 이야기, 동시에 대한 그리고 아동문학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70년대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80년대에는 장사를 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사업을 접고 동시쓰기에 전념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다양한 인생이 현실 참여 동시집부터 동심이 가득 담긴 저학년 동시집과 고학년 동시집까지 그가 만들어낸 시세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

본사 주최 제1회 신춘문예 당선작, 시"어떤 사랑에 대해"'전국 왕중왕' 뽑혀

본사 주최 제1회 신춘문예 당선작, 시"어떤 사랑에 대해"'전국 왕중왕' 뽑혀 고병택 기자 승인 2008.09.05 14:55 창조문학신문사, 2008 신춘문예당선작 평가 15288 ▲ 시 부문에 당선된 이성이씨가 수상하고 있다.ⓒ뉴스제주 본사가 주최한 제1회 영주신춘문예(뉴스제주 주최) 당선작 시 "어떤 사랑에 대해"(이성이)가 2008년도 전국 언론사의 신춘문예 당선작 가운데 최고 작품인 '전국 신춘문예 당선작의 왕중왕 시'로 뽑혔다. 창조문학신문사는 2008년 시 부문의 ‘신춘문예 당선작 가운데 최고의 작품인 '왕중왕'에 해당하는 시로 제1회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인 '어떤 사랑에 대해'(이성이)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성이씨는 영주신춘문예 공모에서 '어떤 사랑에 대해'와 '자반 고등어' 등 5편의 ..

[제39회 중앙시조대상] 단추 달다 끄적인 메모의 깜짝선물

중앙신춘시조상 - 김나경 구멍 기둥이 풀려있는 단추를 그러안은 헐렁한 하품이다 배고픈 결속이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지금 잠시 흔들린다 생명이 없는 것은 그 어둠을 알 수 없지 맨 처음 잠겼으니 맨 나중 풀린다는 입술이 어처구니없게 헛소리를 물고 있다 소통이나 화해 같은 말랑하고 둥근 약속 나가려는 너를 잡고 매달리다 떨어져도 한 가닥 실오라기는 변치 않을 흔적이다 조심조심 건너온 2020년 한 해가 저무는 12월, 당선 소식은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이 무게가 기쁨일까요. 한순간 먹먹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장을 하면서도 대학진학은 문창과가 아닌 군사학과를 지망한 것은 집안의 큰 그릇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군으로 근무하면서도 마음속 새 한 마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