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밟기 /조정인
달빛 밟기 조정인 한밤중 잠에서 깼어. 방바닥에 달빛이 소복했어. 손바닥으로 쓸면 뽀얗게 묻어날 것 같았어. 달빛을 덮고 강아지 송이는 곤히 잠들었어. 반 뒤집힌 귀를 가만히 펴주었어. 보라색 가느다란 실핏줄들이 지나가는 귀. 작은 앞발도 쥐어보았어. 달빛이 희게 내린 동그란 이마에 입술도 얹어보았어. 나도 달빛 한 자락 끌어다 덮고 송이 곁에 누워 송이 코고는 소리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어. 강아지 잠 속에도 내 잠 속에도 달빛은 내려 쌓여서 꿈속의 내가 강아지 꿈속으로 놀러갔어. 우리는 포근포근 달빛을 밟았어. 국화꽃무늬 강아지 발자국 내 발자국이 머뭇머뭇 뒤따라왔어. ㅡ『동시마중』(2021,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