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돔 / 이명숙 옥돔 이명숙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 시를♠읽고 -수필 2015.07.29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리운 102/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리운 102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 시를♠읽고 -수필 2015.07.23
병에게/조지훈 병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시를♠읽고 -수필 2015.07.17
장마/김주대 장마 김주대 아버지만 당신의 생애를 모를 뿐 우리는 아버지의 삼개월 길면 일 년을 모두 알고 있었다 누이는 설거지통에다가도 국그릇에다가도 눈물을 찔끔거렸고 눈물이 날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이구 더바라 아이구 더바라 하며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놓고 했다 아직은 아버지가 눈.. 시를♠읽고 -수필 2015.07.15
어떤 관료/김남주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디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집『조.. 시를♠읽고 -수필 2015.07.10
도시가 키운 섬 ―감천마을 / 최삼용 도시가 키운 섬 ―감천마을 최삼용 비탈길 뒤뚱이며 기어 오른 마을버스에서 내려 까마득한 돌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면 마주 오는 사람 비켜가기 위해 잠시 된숨 놓아도 되는 그래서 노곤이 땟물처럼 쩔어진 골목은 이웃집 형광등 불빛까지 남루가 고인 저녁을 달랜다 액땜인 양 보낸 하.. 시를♠읽고 -수필 2015.07.10
소화기 친구/김영철 소화기 친구 김영철 조금 귀찮겠지만 한 번식 흔들어 주렴! 좋은 친구 되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하듯 두 눈을 다 가리고도 찾을 수 있게 말이야. 언젠가는 내가 정말 필요할지도 몰라! 건강하게 지내다 나쁜 불이 나타나면 모든 것 삼겨버리기 전에 막아야만 하거든. ―어린이시조집『마음 .. 시를♠읽고 -수필 2015.07.03
외상값 / 신천희 외상값 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 시를♠읽고 -수필 2015.06.26
각별한 사람/김명인 각별한 사람 김명인 그가 묻는다,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언제쯤 박음질된 안면일까, 희미하던 눈코입이 실밥처럼 매만져진다 무심코 넘겨 버린 무수한 현재들, 그 갈피에 그가 접혀 있다 해도 생생한 건 엎질러 놓은 숙맥(菽麥)이다 중심에서 기슭으로 번져가는 어느 주름에 저 사람.. 시를♠읽고 -수필 2015.06.24
수화기 속의 여자/이명윤 수화기 속의 여자 이명윤 어디서 잘라야 할 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고객이었다가 수화기를 놓.. 시를♠읽고 -수필 201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