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66

신경림 시선집 1...115.116.117.118.119.120

115 강길 2 새참이 지났는데도 장이 서지 않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버스가 멎고 고추부대 몇자루가 내려와도 사람들은 고샅에 모여 해장집 의자에 앉아 더 오르리라는 수몰보상금 소문에 아침부터 들떠 있다 농협창고에 흰 페인트로 굵게 그어진 1972년의 침수선 표시는 이제 아무런 뜻도 없다 한 반백년쯤 전에 내 아버지들이 주머니칼로 새겼을 선생님들의 별명 또는 이웃 계집애들의 이름이 헌 티처럼 붙어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만이 다시는 못 볼 하늘을 향해 울고 있다 학교로 올라오는 물에 잠길 강길을 굽어보며 학교 마당을 좁게 메운 채 울고 있다 08.01.22/ 0시 9분 116 진도의 무당 진도에서 자정께 시작된 굿은 동이 터도 끝나지 않는다 혼일랑 아예 원혼의 길잡이로 멀리 구천으로 나들이를 보내고 무당은 ..

2008 필사 시 2021.01.21

편지 7 / 서시 / 객지 -고정희 시를 읽으면서

고정희 시를 읽으면서 고정희 시를 읽어보면 다른 어느 시인보다도 언어를 다듬고 엮고 끼어맞추는 솜씨와 능력이 뛰어나고 탁월하다 는 알 수 있습니다. 남모르는 지독한 많은 공부가 있었던 것이지요. 시를 다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재 같이 보고 있는 신경림(전집)시인의 시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선화, 추수하는 아가씨]를 쓴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용어를 최초로 시에 도입했다고 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신경림 시를 보면은 우리네 옛날 일상용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돌확, 방아확, 같은 사물이나 황아장수, 묵도꾼 같은 말들은 지금은 용처나 용도가 없어져서 말 또한 거의 쓰지 않지만 몰라서 못쓰는 아름다운 우리말도 많이 나옵니다. 그 게 또한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도..

2008 필사 시 2021.01.21

객지 /고정희

객지 /고정희 어머님과 호박국이 그리운 날이면 버릇처럼 한 선배님을 찾아가곤 했었지. 기름기 없고 푸석한 내 몰골이 그 집의 유리창에 어른대곤 했는데, 예쁘지 못한 나는 이쁘게 단장된 그분의 방에 앉아 거실과 부엌과 이층가 대문 쪽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그분의 옆얼굴을 훔쳐보거나 가끔 복도에 낭낭하게 울리는 그 가족들의 윤기 흐르는 웃음 소리, 유독 굳건한 혈연으로 뭉쳐진 듯한 그 가족들이 아름다움에 밀려 초라하게 풀이 죽곤 했는데, 그분이 배려해 준 영양분 가득한 밥상을 대하면서 속으로 가만가만 젖곤 했는데, 파출부도 돌아간 후에 그 집의 대문을 쾅, 닫고 언덕을 내려올 땐 이유 없이 쏟아지던 눈물. 혼자서 건너는 융융한 삼십대. -----------------------------------------..

2008 필사 시 2021.01.21

신경림 시선집 1...109.110.111.112.113.114.

109 엿장수 가윗소리에 넋마저 빼앗겨 죽은 아이들이 돌아들 오는구나 비석치기* 사방치기 자치기 하면서 늦콩 열린 들길 산길을 메우고 엿장수 가윗소리에 어깨춤을 추는구나 어허 넘자 요령소리에 비칠걸음 치는구나 사라졌던 것들이 돌아들 오는구나 가시내들 삼베치마 삼승버선 입고 싣고 올곡 선뵈는 장골목을 메우는구나 엿장수 가윗소리에 덩더꿍이 뛰면서 휘모리 숨찬 가락 흥이 절로 나는구나 잃어진 것 잊혀진 것들이 돌아들 가는구나 살아 있는 것들 데불고 가는구나 도갓집 사랑, 깊은 골방에서 엿장수 가윗소리에 넋마저 빼앗겼구나 들판을 고갯길을 선창을 메우면서 가는구나 살아 있는 것들 죽은 아이들 사라진 것들 따라가는구나 08.01.22/ 밤 11시 22분 비사치기 - 돌치기 - 돌을 비석처럼 세워놓고 그것을 여러 가..

2008 필사 시 2021.01.21

사십대 /고정희

사십대 /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08.01.22/ 오후 3시 38분 *보속補贖 죄의 값을 보상함.

2008 필사 시 2021.01.21

신경림 시선집 1....103.104.105.106.107.108

103 베틀노래 간밤에 내 사내 맨발로 재를 넘더니 강 건너 묵은 밭에 눈바람이 치려나 가는 무명 한자락 뭉턱 잘라서 솜버선 만들어 언 발 감아주려네 돌 가시어 찢긴 발가락 감아주려네 갈가마귀떼 달빛 줄기 타고 올라가 하늘과 땅 달과 별을 새까맣게 죽이더니 두억시니* 몰려들어 방물배를 엎으려나 갈대 우거진 길에 벙거지만 들나고 내 사내 더듬는 길목 나무 꺽이는 소리뿐 속이지 마오 속이지 마오 날더러 월궁의 못난 선녀라 속이지 마오 부티 허리에 풀고 복이라도 손에 잡고 사내 따라갈 나를 칠성판에 누워라도 갈 나를 간밤에 활고자 온 마을에 드리더니 내 사내 밟는 돌에 검은 피 엉기더니 *두억시니 - 사나운 귀신. 야차 08.01.21/ 오후 5시 26분 104 길 1 황아장수* 황아짐 따라 장길 골목길 기웃..

2008 필사 시 2021.01.21

신경림 시선집 1...97.98.99.100.101.102

97 승일교 타령 휴전선을 떠도는 혼령의 노래 2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고 짐승들 짝지어 진종일 넘고 강물 위에서는 네 목욕하고 그 아래서는 내 고기 잡고 물길 따라 네 뜨거운 숨결 흐르고 조상님네 사랑이야기 만주 넓은 벌 말 달리던 이야기 네 시작하면 내 끝내고 초저녁달 아래서 시작하면 새벽별 질 때 끝내고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 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 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 98 곯았네 - 휴전선을 떠도는 혼령의 노래 3 곯았네 곯았네 뎅이만 슬슬 굴려라 새금파리 유리조각 찾기도 좋게 곯았네 못 본 체 넘어가면 우리 발이..

2008 필사 시 2021.01.21

고정희 유고시집 제 3부 /몸통일 마음통일 밥통일이로다

고정희 유고시집 제 3부는 무지 깁니다. 여기서도 주제는 밥인데 무릇 밥이란 무엇인가요. 안 먹고는 살 수 없는 그 것 때문에 온갖 수모를 겪기도 하지요. 그 밥을 장석주는 밥 한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부끄러워한다고 하였지요.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

2008 필사 시 2021.01.21

고정희 유고시집...34.35.36.37.38.39.40

34 외경일기 어느날의 창세기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강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스르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산들이 마을로 무너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나무들이 뿌리를 창궁으로 치켜들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생명 있는 것들의 너그러움 부드러운 흙가슴의 너그러움 공기의 너그러움 천체 운행의 너그러움일 거야 별들이 저마다 주어진 길을 돌고 바람이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우듯 핏물이 밥사발에 범람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너그러움일 거야 세계인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덮지 않는 것은 일말의 너그러움일 거야 돌들이 일어나서 소리치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어머니가 방생한 너그러움 임신한 여자가 담보 잡힌 너그러움일 거야 등뼈를 쓰다듬는 너그러움 살기를 풀러내는 너그러..

2008 필사 시 2021.01.21

신경림 시선집 1...91.92.93.94..95.96

91 故鄕에 와서 아내는 눈 속에 잠이 들고 밤새워 바람이 불었다 나는 전등을 켜고 머리맡의 묵은 잡지를 뒤적였다 옛친구들의 얼구을 보기가 두렵고 부끄러웠다 미닫이에 달빛이 와 어른거리면 이발소집 시계가 두 번을 쳤다 아내가 묻힌 무덤 위에 달이 밝고 멀리서 짐승이 울었다 나는 다시 전등을 끄고 홍은동 그 가파른 골목길을 생각했다 08.01.16/ 잔 2시 19분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3번째 시집 [달 넘세] 1985년 창작과 비평 출간 92 씻김굿* 떠도는 원혼의 노래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밤도 낮도 없는 저승길 천리 만리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잘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보리밭 풀밭 모..

2008 필사 시 202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