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4322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49>한낮에/이철균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lt;149&gt;한낮에나민애 문학평론가입력 2018-06-30 03:00수정 2018-06-30 08:26 한낮에―이철균(1927∼1987) 영(嶺) 넘어 구름이 가고 먼 마을 호박잎에 지나가는 빗소리 나비는 빈 마당 한 구석 조으는 꽃에 울 너머 바다를 잊어 흐르는 천년이 환한 그늘 속 한낮이었다 이철균..

작가노트 -독거/안현미

독거 ​ ​ 안현미(安賢美) 일요일은 동굴처럼 깊다 압력밥솥에서 압력이 빠지는 소리를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만큼 좋아한다 그 소리는 흩어진 식구들을 부르는 음악 같다 일요일은 음악 같다 십자가는 날개 같다 천사의 날개 고난 버전 같은 십자가 아래 누군가 깨지지도 않은 거울을 ..

작가노트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담장을 허물다 ​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

고양이 시 모음 -이장희/황인숙/ 이소연/김상미/조용미/김충규/조은/김연아/고형렬/송찬호....외

고양이의 꿈 이장희 시내 위에 돌다리 다리 아래 버드나무 봄 안개 어리인 시냇가에 푸른 고양이 곱다랗게 단장하고 빗겨 있소 울고 있소 기름진 꼬리를 쳐들고 밝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지요. 푸른 고양이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스르르 올라가 버들가지를 않고 버들가지를 흔들며 또 목놓..

곽문연 -시를 수선하다/어머니의 텃밭/햇빛 손가락

시를 수선하다 곽문연 탈고 중인 시 한 편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읽는다 낡아서 보풀이 일어나는 옷처럼 시의 행간이 닳고 닳았다 옷을 고치는 수선공처럼 치수를 재고 헐렁한 행간을 박음질한다 사족처럼 너덜거리는 실밥을 뗀다 각진 모서리가 주머니 밖으로 불쑥 삐져나오고 ..

내력/ 김선우 -나는 여기 피어 있고/이순현

내력/ 김선우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 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

운주사 시 모음 -권정우/신현정/임영조/김신예/김창완/허형만/함민복/이재무 외...

운주사 와불 권정우 천 개의 부처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뒤에도 나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테지만… 당신 곁에 또다시 천년을 누워 있어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천 개의 석탑이 다시 바위로 들어가 버린 뒤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겠지만… 내가 당신 곁에 얼마..

탁란 시 모음 -김선우/오세영/박미라/강희안/김신용

탁란* 김선우 암자의 겨울 아침은 난생(卵生)설화로부터 시작된다 계곡 아랫녘엔 노(老)보살의 빨래 방망이질 소리, 푸른 강보에 싸인 갓 낳은 알 하나가 목젖 부은 뻐꾹새 울음으로 지상에 내려온다 남의 둥지에 슬픔 한 알을 낳아 놓는 순간이 한겨울에도 부득불 얼음장을 깨고 앉은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