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조♠감상해 보자 405

할머니의 운동 /이정록

할머니의 운동 이정록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하고도 운동 삼아 했다고 합니다. 이웃집에 갔다가 한나절 마늘을 까주고 와서도 운동 삼아 놀고 왔다고 합니다. 허리 두드리며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서도 운동 삼아 꽃을 보고 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어제도 운동 삼아 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루하루 운동 삼아 살다 보면 슬플 새도 없다고 합니다. 오늘은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책상에 엎드려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운동 삼아, 할머니가 학교에 왔습니다. 비가 그치자 앞산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우산을 접고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바라봅니다. “할머니! 꽃구경 갈까요?” 할아버지와 하느님이, 운동 삼아 무지개 줄넘기를 합니다. ㅡ『동시 먹는 달팽이』(2020, 여름호)

버스 기다리는 가방 /김은영

버스 기다리는 가방 김은영 교문 옆 학교 버스 서는 자리 운동장 바닥에 책가방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앉았네. 아이들은 그네 타고 미끄럼을 타고 축구 하고 노는데 뙈약볕 아래 책가방 대신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네. 버스 언제 오냐고 집에 언제 가냐고 보채는 가방 하나 없네 ㅡ동시집『희망 1인분』(열린어린이, 2020, 12) 2021년 3월 4일 20시 22분 목요일

병아리 발표회 /이정록

병아리 발표회 이정록 나는 격파왕 병아리입니다. 부리가 가장 셉니다. 일등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알껍데기를 깨자 해가 떴습니다. 새벽마다 해를 끌어올리겠습니다. ​ 나는 관찰왕 병아리입니다. 눈이 정말 짝눈입니다. 오른눈은 멀리 독수리를 살피고 왼눈으로는 모이를 찾습니다. 독수리 그림자도 쪼아 먹겠습니다. ​ 나는 병아리 학교 회장입니다. 참을성이 으뜸입니다. 날달걀 하나로 스무하루를 견뎠습니다. 나는 마늘도 없이 버텼습니다. 나 홀로 쑥도 없이 탄생했습니다. ㅡ『동시마중』(2021, 1~2월호)

작은 집 /박선미

작은 집 박선미 뒤적이고 또 뒤적여도 나오지 않는다. 왔던 길 또 가 봐도 없다. 열쇠가 사라졌다. 그네를 흔들흔들 편의점 앞을 어슬렁어슬렁 날마다 심부름시켜 짜증나던 형아를 심심하면 건드려서 귀찮던 형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커다란 점퍼 안에서 기다린다. 형이 물려준 옷 투덜대며 입었는데 오늘은 작은 집이 되어 주었다. ㅡ동시집『먹구름도 환하게』 (아이들판, 202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