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조♠감상해 보자 405

그 할아버지네 손자 1 2 3

그 할아버지네 손자 ․ 1 - 0살 때 권오삼 배 속에 있는 애기 잘 자라고 있는지 보려고 엄마가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찍었어요. 쪼꼬만 애기가 쪼꼬만 입으로 하품을 하고 있어요. 꼼틀꼼틀 몸 풀기 운동에 엄마 배 툭툭 태권도 연습을 하고 있어요. 애기가 애기가 쬐끄만 애기가 쬐끄만 방 속에서 으앙!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며 주먹 꼭 쥐고 있었어요. -------------------------------- 그 할아버지네 손자 ․ 2 - 두 살 때 권오삼 무엇에든 호기심이 많아서 눈에 띄는 대로 끄집어 내리고 집어던지고 내팽개친다. 못하게 하면 바로 으앙- 울음 폭탄 터뜨린다. 그러면 모두 꼼짝 못한다. 아직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나이여서 모두 꾹 참고 지낸다. -------------------..

평화상은 누가 /손동연(제11회 열린아동문학상 수상작)

평화상은 누가 손동연 노벨 평화상은 꽃들이 받아야 해요. 포탄이 떨어진 땅에서도 웃음을 피워올리잖아요. 노벨 평화상은 지렁이들이 받아야 해요. 포탄이 묻힌 땅속에서도 지구의 숨구멍을 뚫고 있잖아요. 노벨 평화상은 별들이 받아야 해요. 포탄이 날아다니는 하늘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만들잖아요. 사람들은요? 대포가 팡, 팡, 팡! 폭죽을 터뜨리거나 색색의 솜사탕을 뭉게구름처럼 퍼뜨릴 때 총이 흙을 향해 온갖 꽃씨들을 쏟아내는 그런 날이 오면, 온다면...... ―『열린아동문학 88호』(2021년 봄호) ―

왕궁리 오층석탑 /이윤구

왕궁리 오층석탑 이윤구 우리 둘째이모는 안보고도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라 예뻤다. 지금은 팔순 지난 나이지만 젊을 땐 더욱 고왔다. 나 어렸을 때 이쁜 이모가 시집을 갔다, 익산시 왕궁면 동촌리 포전마을 진주 소씨 집안에 맏며느리로 그래 우린 ‘포전이모’라 불렀다. 거길 가면 동네 분들은 ‘지경댁’인 이모 우리 외가는 옥구군 대야면 지경리 사돈네 또래 조카들이랑 연 띄우며 놀다보면 문득 산에서 돌화살촉도 주웠다. 물론 지금은 어디론가 놓쳐버렸다. 잡았다 날려버린 잠자리처럼 시외버스 타고 금마에서 내려 들길 걸어 내를 건너 산 넘어 골목길 돌아 도착하는 이모네 기와집 솟을대문이 높았다. 마당도 넓고 토방도 높고 마루 밑 지하 굴에 생강이 가득 아래채 방에는 누에가 잠발 가득 뽕잎 먹는 사각사각거리는 소리 밖..

이러다 /조소정

이러다 조소정 호수 주변에 레일바이크가 생기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철새들 숫자는 줄어들었다. 조만간 산책길 옆 논과 밭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황금빛 출렁이는 벼 나란히 자라는 배추 다시 볼 수 없고 짹짹 몰려다니는 참새 떼 깍깍 반가운 까치 떼 노랫소리도 들을 수 없겠지? 이러다 정말 사람만 남겠다. ―동시집『연습장에서 튕겨 나간 곰』(아동문학평론, 2021. 2)

리모델링 /안도현

리모델링 안도현 느티나무 위태로운 줄기 끝이다 비어 있던 까치둥지에 까치 부부가 날아와서 집을 고친다 나뭇가지 하나씩 물고 와 얹어 놓고 한참 상의하다가 또 한참 생각하고 바람이 거칠어지는 날을 기다렸다가 마른 풀잎을 엮어 벽을 막을 것이다 넘어진 기둥이 일어서고 허물어진 서까래가 반듯해지고 뒤틀어진 울타리가 튼튼해지고 설계 도면도 없이 크레인도 없이 한 달 넘게 리모델링 공사가 계속되었다 하늘이 보이는 쪽창을 달고 초록 벽지를 바르고 까치 부부의 입주가 시작된 날 고층 아파를 세우기 위해 마을에는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꾸러졌다 ―『동시마중』(2021, 2-4월호)

누가 더 섭섭했을까 /윤재림

누가 더 섭섭했을까 윤재림 한 골짜기에 피어 있는 양지꽃과 제비꽃이 한 소년을 좋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소년이 양지꽃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내가 좋아하는 노랑 제비꽃!" 양지꽃은 온 종일 섭섭했습니다. 노랑제비꽃도 온 종일 섭섭했습니다. ―동시집『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문학동네, 2018)

사막이 되는 방법 /김성민

사막이 되는 방법 김성민 바위야, 들어 봐 사막이 되는 방법을 알려 줄게 시간을 마셔 날마다 한 모금의 시간을 말이야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건 소용없어 날마다가 중요해 햇볕도 꾸준히 먹어 두고 바람이랑 친구처럼 지내 새들이 앉아서 갈 생각 않는다고 괜히 신경질 부리지 말고 가끔 이끼를 꺼내 입어도 좋아 준비 됐어? 그럼 시작! ― 『고향에 계신 낙타께』 (창비 2021)

엄마가 다 해 줄게 /임복순

엄마가 다 해 줄게 임복순 이따가 잡채 만들어 줄까? 삼계탕 끓여 줄까? 전 부쳐 줄까? 먹고 싶은 거 말해봐. 다 해 줄게. 배불러 더는 못 먹는다고 해도 종일 음식을 만든다. 방학 때 놀러가면 외할머니는 엄마만 따라다니며 묻는다.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다 해 줄게. ―『시와 소금』(2021, 봄호) 2021년 3월 7일 18시 02분 일요일

첫눈 내린다 /박혜선

첫눈 내린다 박혜선 학원 버스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라면 먹는다 파란 조끼 아저씨 내 옆에서 라면 먹는다 창밖에 눈발 날리는데 4시 45분을 달리는 시계 보며 라면을 먹는다 "예, 그럼요. 지금 몇 신데 아직 점심 안 먹었을까 봐. 예예. 여기도 조금씩 날려요. 엄마, 저 운전 중이니까 나중에 전화할게요." 전화를 끊으며 면발도 끊으며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바삐 나간다 창밖, 택배 트럭이 떠나는데 눈이 내린다 나를 태울 수학 학원 버스가 오는데 눈이 내린다 빈 그릇을 치우고 뛰어가는데 첫눈이 펑펑 내린다 ―동시집『바람의 사춘기』(사계절,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