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조♠감상해 보자 405

고구마 이야기 /권오삼

고구마 이야기 권오삼 1 지금부터 50년 전 전라남도 해남 땅 고구마 부족 중에 한 영웅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밤고구마'이다. 본래 이름은 고구마 부족답게 그냥 고구마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밤'과 손을 잡고는 '밤고구마'라며 스스로 고구마왕이라 했다. 그러자 같은 해남 땅에서 태어난 한 고구마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뭐시라, 지가 고구마왕이라고, 흥!" 얼른 '호박'과 힘을 합치곤 내가 진짜 고구마왕이랑께! 하며 밤고구마와 맞서니 이가 바로 '호박고구마'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며 또 한 고구마가 둘의 흉내를 내어 '꿀'과 힘을 합치고는 난 '꿀고구마'여! 하며 자기가 진짜 고구마왕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우리나라의 고구마는 세 고구마가 서로 다투는 삼국 시대가 되었고 그들은 ..

눈보라 치는 밤 /권오삼

눈보라 치는 밤 권오삼 이런 밤이면 매의 눈에 매부리코를 한 마왕이 검은 말에 검은 망토 펄럭이며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리지 사람들을 만나면 채찍으로 휙 코를 자르고 귀를 자르고 찬바람으로 꽁꽁 입을 묶어버리지 사람들은 마왕이 무서워 복면강도처럼 눈만 빠끔 내놓고 고개 푹 숙인 채 종종걸음 치지 서둘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ㅡ『어린이문학』 (2020. 겨울호)

한상순 -힘쎈 봄/축구공이 뿔났다/고래가 사는 집(2020 제14회 서덕출문학상)

힘쎈 봄 한상순 어느 날, 알통 굵은 고드름이 끌려갔다. 그 날, 오동통한 눈사람도 끌려갔다. 축구공이 뿔났다 한상순 내가 둥글둥글하다고 늘 둥글둥글하진 않아 나도 뿔날 때가 있거든 옆구리 터지도록 채였는데 골인 못하고 골대 맞고 튕겨 나올 때 있지? 그때가 바로 내가 뿔 날 때야 진짜 뿔나! 고래가 사는 집 한상순 바다에 가지 않아도 돼 고래를 만나기 위해.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 있지 않아도 돼 고래를 기다리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는 건 더욱 아니야 고래를 잡기 위해. 아주 쉽게 고래를 만나려면 오늘 밤 우리 집으로 오렴. 어? 벌써 아빠 오실 시간이네? "딩-동" 딱, 지금이야! "아니, 오늘도 술이에요, 술?" 술고래 아빠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엄마고래. -----------..

산길 /이성자

산길 이성자 어등산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에 자잘자잘 피어있는 풀꽃들 너는 도루박이지? 반가워서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데 내 이름도 불러주세요! 바로 옆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울먹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서. -동시동화집『꽃길도 걷고 꼬부랑길도 걷고』(해솔. 2021)

바다거북이 장례식 /고영미

바다거북이 장례식 고영미 코에 꽂힌 빨대 목에 감긴 고무 배에 가득한 쓰레기 실린 몸으로 제주 해안에 와 마지막 숨을 내려놓습니다.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파도가 모래 한 자락 가만히 덮어줍니다. 긴 날개로 눈물 닦던 갈매기 땅과 하늘 오가며 연락합니다. 낮달이 동그란 창으로 바다거북이 들어오라고 가만히 문을 엽니다. ―『동시먹는달팽이』(2020, 여름호)

건축사 자격증 /김완기

건축사 자격증 김완기 첫 날에 물었지 ―진흙 날라 오는 제비야, 흙집 기술 어디서 배웠니? 둘째 날에 물었지 ―종일 쉬고 있는 제비야, 기다림은 누구에게 배웠니? 셋째 날에 또 물었지 ―지푸라기 엮어 다지는 제비야, 처마 밑이 명당인 거 언제 배웠니? 살짝 빨래줄에 앉더니만 ―궁금하니? 우린 건축사 자격증 있어. 집 짓는 기술, 누구도 못 따라올 걸. ―『국제문학』(24호) 2021년 3월 2일 오전 10시 26분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