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조♠감상해 보자 405

달팽이 /송재진

달팽이 송재진 "퍽 무거운 짐을 졌구나!" 끌끌, 혀 한 번 차고 돌아서면 그만이었는데 오늘은 쉽게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아버지 홀로 누운 병실 돌아 나오는 길모퉁이에서..... "너 참말 무건 짐을 졌구나, 달팽이!" 지금, 어느 골목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계실 어머니..... 생선 광주리는 좀 가벼워졌을까? 어서 커서, 내가 그 무게를 나눠지고 싶다. 병원 담장 위 젖은 비둘기 분홍 발목이 오늘 따라 유난히 눈에 아프다. ―『동시먹는달팽이』(2021년 봄호)

나의 생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박해정

나의 생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박해정 이순신은 무한 리필 고깃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기로 했어. 그런데 꼭 오겠다던 친구들이 학원에서 발만 동동 굴렀어. 열두 척의 배는 이순신 앞으로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부두에 묶여 가끔 신호만 날렸어. 미안해, 순신아! 입맛이 급격히 떨어진 이순신은 고스란히 돈을 물어야 했는데 이건 접시에 남겨진 고기에게도 미안한 일이잖아?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며 달을 향해 중얼거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생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걸 그랬어! ​ ⸺동시집『넌 어느 지구에 사니』(문학동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