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조♠감상해 보자 405

봄에는 전화기가 시끄러워 /박민애

봄에는 전화기가 시끄러워 박민애 부산에는 벚꽃이 다 피었다며? 경주 벚꽃 터널은 만드는 중이고 안동은 개나리 동산한테 양보했다네 네가 있는 그 곳은 어때? 어, 여긴 아침 저녁으로 눈치 보는 중이야 봄이 구석구석 잘 다니고 있는지 봄꽃 전화기는 내내 수화기 돌리고 있다 ―『동시발전소』(2020년 가을호)

나무가 나무에게로 /오지연

나무가 나무에게로 오지연 걸어갈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나무는 언제나 다른 나무에게 다가가고 싶다. 하지만 푸른 손을 내밀어도, 뒤꿈치를 들어봐도, 나무는 다른 나무에 가 닿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새들을 기른다. 다른 나무에 갈 수 있는 날개가 달린 새를. 그래서 나무는 바람을 기른다. 다른 나무에 갈 수 있는 발이 달린 바람을. 나무는 다른 나무가 그리우면 언제든지 새가 되어 날아간다. 어디라도 바람 되어 달려간다. ―『동시발전소』(2020년 겨울호)

예술 의자(가슴으로 읽는 동시)

예술 의자 동네 입구에 헌 의자가 버려졌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느티나무 바람 친구를 가만히 불러와 춥지 말라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잎을 떨어뜨려 가만가만 덮어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야! 멋진 예술작품이다!” 눈을 크게 뜨고 앞에서도 뒤에서도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댄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헌 의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멋진 예술이 되었다. -박해림(1954~ ) 산에 들에 수북한 낙엽. 다가가면 부스럭부스럭 맞아준다. 낙엽 소리는 귀를 적시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인들의 낙엽 시처럼.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이생진).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구르몽). ‘나는/ 어데서 굴러온/ 누런 잎이뇨’(김광섭). 잠들었던 정신을 흔들어 깨워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고..

눈사람 /최지원(가슴으로 읽는 동시)

[가슴으로 읽는 동시] 눈사람 박두순 동시작가 입력 2020.12.31 03:00 어지러운 걸 꾹 참고 구르고 또 굴렀더니 속도 희고 겉도 하얀 사람으로 태어났다 위, 아래도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최지원(1967~ ) 눈사람 눈사람은 굴림으로 태어난다. 눈밭을 구르고, 굴려야 온전히 서는 눈사람. 구를 때의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면 속과 겉이 하얀, 둥글둥글한 사람이 못 된다. 3, 4연에서 갑자기 눈사람이 ‘사람’으로 바뀌었다. 슬쩍, 사람 이야기로 바꿔본 것이다.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띄운 것이다. 눈사람 의미를 사람의 세상살이와 같은 위치에 놓고 읽었다. 구를 때는 세상살이, 어지러움은 그 괴로움이나 아픔, 어려움이 아닐까. 그런 걸 참아내야 올곧은 사람, 둥글게 사는 원만한..

허리띠의 역사 /윤형주(가슴으로 읽는 동시)

[가슴으로 읽는 동시] 허리띠의 역사 박두순 동시작가 입력 2020.12.17 03:00 우리 할아버지 때는 배가 고파서 허리띠를 조였고 잘살기 위해 아끼며 허리띠를 조였단다. 요즈음은 잘 먹고 배가 나와서 허리띠를 조이고 멋 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인다. -윤형주(1972~) 이런 역사도 있네. ‘허리띠 역사.’ 두 시대를 허리띠 맨 형상으로 보여주는 역사다. 가난함과 넉넉함으로. 우리의 지난날과 오늘날 삶의 모습이다. 허리띠를 ‘조이는’ 건 두 시대의 공통점. 한 시대는 배고파 잘살려고 허리띠를 조였고, 다른 시대는 잘 먹어 나온 배를 감추려고 허리띠를 조인다. 두 시대의 상반된 얼굴이다. 어린이는 이런 걸 이해할까? 옛날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읽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