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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밤 /이태정

문학의 밤 이태정 이름값 좀 한다는 시인 한 분 모셔놓고 나머지 무명 시인 박수 부대 동원됐다 시인과 시인만이 모여 관객은 하나 없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빤한 레퍼토리를 처음처럼 들어주다 ooo 시인의 밤이 새벽같이 깊어지면 서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의 볼멘소리 숲을 지킨 부엉이 울음처럼 서글펐고 밤은 더 한쪽으로만 기울었다 더-더-더-더 ―시조집『빈집』(책만드는 집, 2022)

태풍의 눈 /김영순

태풍의 눈 김영순 바다도 바람나고 싶을 때 있나 보다 필리핀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제주섬을 한바탕 휘 돌아오는 광풍의 눈 굴린다 아무리 연약해도 무리 지으면 버텨낸다 순록도 그 중심에 새끼들 들여놓고 비잉빙 가장자리 돌며 여린 잠을 지켜낸다 세상의 어떤 일도 그 안에선 잠잠하다 아가야, 네 눈 속에는 무엇이 깃들었을까 하마면, 그 태풍의 눈에 까꿍 할 뻔 그랬다 ―『시와소금』 (2022, 겨울호)

달과 고래 /김영순

달과 고래 김영순 일부러 그대 안에 며칠씩은 갇힌다 행원리 어등포구 일곱물이나 여덟물쯤 기어코 월담을 하듯 원담에 든 남방돌고래 섬 뱅뱅 돌다 보면 거기가 거기인데 마을 장정 서너 명이 내쫓아도 들어온다 네게도 피치 못할 일 있기는 있나보다 저 달은 하늘에서 들물날물 엮어내고 저렇게 하늘에서 한 생명 거느린다 내 생애 참았던 그 말 물숨이듯 뿜고 싶다 ―『시와소금』 (2022, 겨울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박숙경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박숙경 금계국 떠난 옆 자리에 기생초 꽃 피운 걸 보면 가뭄에 말라가는 실개천에서 하루만큼의 목숨을 연명하는 왜가리와 마주치면 모노레일 위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는 까치들을 보면 큰 물 지나가면 허물어질 걸 짐작하면서도 정성껏 돌탑을 쌓은 이의 마음이 느껴지면 오래전 수레국화 피었다 진자리에 다시 수레국화 철없이 피어난 걸 보면 시멘트 담벼락을 위로만 오르는 담쟁이넝쿨을 보면 걷다가 지쳤을 때 이마를 만지고 가는 몇 올의 바람을 생각하면 꽃 피어 어디에 쓰일까 싶어도 나비한테 무당벌레한테 꽃술을 내놓은 꽃의 풍경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