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4322

시창작강의 /안도현 -내 눈을 감기세요/김이듬

시창작강의 안도현 내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 선배들이 말했죠 고독한 체하지 마라 고독에 대해 쓰지 마라 제발 고독, 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마라 나는 40년 넘게 고독을 피해 다녔죠 고독이 다가오면 앞발로 걷어차 버렸고 강가에 갔을 때는 얼음장을 강물에 던져 버렸죠 얼음에 살을 벤 교각이 울더군요 고독하지 않기 위해 출근을 했고 밥이 오면 숟가락을 들었죠 강연 요청이 오면 기차를 타고 갔고 어제는 대통령선거를 도왔어요 오늘은 다초점렌즈를 바꾸러 안경점에 갔고요 오래 읽지 못한 시집 세 권과 문예지 열댓 권을 새벽에 읽었어요 멀리 피하면 금세 따라붙고 고개를 돌리면 얼굴이 바뀌더군요 고독한 상점들 앞에서 멧돼지가 트럭을 들이받은 거 메모해두세요 고독하지 않으려고 간판을 내다 걸었다는 것도 흰 종이를 들여다..

2010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2010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천수호 -내가 아버지의 구근식물이었을 때 /신정민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아버지는 다섯 딸 중 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 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 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

국어 배우기 -‘표준어 바깥의 세상

‘뻥튀기’와 ‘펑펑이’ “뻥이요!” 튀밥 장수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고샅에 울려 퍼지면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쌀이며 보리, 강냉이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모여든다. 아이들은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바람이 난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에 ‘튀밥’은 ..

데칼코마니 -김지유/이민화/신철규/김현주/김현주/우진용/황희순/박주용/정혜선

데칼코마니 김지유 뭉그러져야 완성되는 그림 형체도 없이 짓이길 때 비로소 만나는 늘 처음 보는 나비, 데칼코마니 끈적이는 우연이 달라붙어 양쪽 날개는 찢기고 지루한 연애가 몸을 바꿔 오는 시간 펼쳐지는 것이 나비만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짓누를수록 기억은 더 푸르게 날아 지독..

[3강] 3.시상 검토하기 /윤석산

[3강] 3.시상 검토하기 강사/윤석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시상을 선정하고 나면 서둘러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마음 속에 들끓으면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시상들을 놓히지 않고 다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과 어서 작품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