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4322

정호승 -부석사 가는 길/그리운 부석사

부석사 가는 길 정호승 부석사 가는 길로 펼쳐진 사과밭에 아직 덜 익은 사과 한 알 툭 떨어지면 나는 또 하나의 사랑을 잃고 울었다 부석여관 이모집 골방에서 젊은 수배자의 이름으로 보내던 그해 여름 왜 어린 사과가 땅에 떨어져야 하는지 왜 어린 사과를 벌레가 먹어야 하는지 벌레도..

자목련 -임영조/최도선

자목련 임영조 화창한 봄날 고궁 뜰을 혼자서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 방긋이 웃으며 아는 체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얼핏 생각 안 나는 저 지체 높고 우아한 자태 어느 명문가 홀로된 마님 같다 진자줏빛 비로드 저고리에 이루 다 말로 못할 슬픔이 서려 앞섶에 살짝 꽂은 ..

비 시 -김정란/정지용/장만영/김억/문인수

비 김정란 어느 하늘을 돌아왔을까 내 쓸쓸함의 새 집 짓는 소리 살과 살 사이에서 하나도 아프지 않게 그 집 창가에 오래도록 머리 기대고 울지 않는, 우는 여자 하나 나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한 새…… 머무는 새…… 젖는 날개 언니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하고 새벽이 올 때까지 (『..

조정인 -사과 얼마예요

사과 얼마예요 조정인 사과는 사실 전적으로 서쪽입니다 사과 속에 화르르 넘어가는 석양, 석양에 물든 맛있는 책장들 산산이 부서지는 새 떼 산소통이 넘어지고 쏟아지는 바람 호루라기 소리 길게, 길게 풀리는 붕대 그리고 구토, 촛불이 타오르는 유리창 당신의 우는 얼굴이 엎질러집..

수몰 지구/전윤호 - 수몰 지구/전윤호

수몰 지구 전윤호 ​ 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 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 지구다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 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

주유소/윤성택 -모든 그리운 것은 뒤쪽에 있다/양현근

주유소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시의 위기 ― 신춘문예 당선시들을 읽고/임 보

■ 권두에세이 시의 위기 ― 신춘문예 당선시들을 읽고 임 보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발간된 신문의 신년호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된다. 금년도 기대를 가지면서 시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데 예년과 마찬가지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의 시가 왜 이런 경향으로 흘러가는..

유강희, 「소금쟁이」-손택수 시배달

유강희, 「소금쟁이」Posted on 2019-05-09 관리자Posted in 2019 손택수, 문학집배원, 시배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유강희 │ 「소금쟁이」를 배달하며… 풀밭이 연못으로 바뀌고 화자는 또다른 소금쟁이로 둔갑을 한 것 같다. 나는 소금쟁이의 점프력에 놀라고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