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안도현 - 연탄 한장 /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 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일 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

삼류 시 - 이재무/정겸/복기완/이길옥/김인자/이화은

삼류들 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을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

월소(月梳) - 유미애 / 김말화

월소(月梳) ―접촉 유미애 달의 꿈속, 당신이 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장미도 모란도 싫어라 나는, 송곳니가 아름다운 짐승이 되기 위해 각두(殼斗)로 잇몸을 파헤친다 첫 그늘에 숨긴 반 조각, 빛을 품고 기다린다 인간이란 상상력이 지나친 종, 생시의 입술은 슬퍼라 기어올라 상처의 끝..

등 - 이규리/서안나/김길용/박일만/김선우/문정영/장이엽/안도현/김지유...외

등 이규리 등은 수식이야 등을 자주 보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지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을 것 같았어요 반쯤이 공허라 해도 또 반쯤이 모호함이라 해도 우린 사실 그곳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언제까지나 늙지 않을 것처럼 뒤를 미루지만 달리 보여줄 게 없을 때 보게 될까 두려울 때..

오빠 모음 시 - 문정희...외

오빠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

단풍 - 송재학/김사이/강신용/함성호/박숙이/박형준/이재무

단풍 송재학 내가 마셔야 할 독의 양만큼 단풍 화물을 실은 기차가 오긴 했다 내 눈동자 안쪽 갱도에서 서행하는 기차는 증기기관, 여정을 단축하는 기차가 있다면 피를 토하는 기관사도 있다 커브에서 덜컹거리는 게 너무 깜깜하여 붉은색과 노란색이 서로 치명적인 줄 알겠다 멀어져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희덕 -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 이규리 - 문병가자 / 함순례 -문병 /이명윤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 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들은 척 나오지 않고 여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시집『어두워진다는 것』(창비, 2009) ---------------------------------- 꽃피는 날..

김경미 - 나,라는 이상함 /

나,라는 이상함 김경미 새소리가 싫은 것 잦은 이사와 기차는 좋지만 둥근 산책과 등산복이 싫은 것 가만히 있는 건 유리창처럼 근사한 일 유리창 옆에 혼자 있는 건 산꼭대기 구름처럼 높은 일 독시체르* 같은 이름 어딘지 지독한 느낌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그 악기의 손자국 같은 부푼 ..

나태주 -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1 /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 2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1 나태주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겨울 아침 골목길 중풍 걸려 추운 날씨인데도 밖으로 나와 걷기 연습하는 늙은 남자를 본다 낡은 유모차에 의지하여 비척비척 가고 있는 늙은 여자를 또 본다 아, 이렇게 찬바람 마시며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 / 고미경 - 탱자 향기 / 장석남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 고미경 당신은 나의 하나뿐인 집이어서 세상의 누추한 노동을 견디고 내가 돌아가는 곳이지만 가슴 아픈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은 화살을 맞고 피 흘리는 프리다 칼로의 사슴은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도 못하고 가시울타리 속으로 파고들었지요 안아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