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일식/서안나-입술/허수경
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1-12월호 2010-08-14 /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