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냉장고, 요실금을 앓다/안오일-화려한 반란/안오일

냉장고, 요실금을 앓다/안오일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냉장고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하는가 그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

화려한 오독 / 임영조 - 길일(吉日) /이수익 - 적멸寂滅 / 최금녀 - 복송꽃 / 이대흠

화려한 오독 임영조 장마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시멘트 길을 온몸으로 긴 자국 행서도 아니도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 쓴 일대기 같다 한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그 판독이 어려운 일필휘지를 촉새 몇 마리 따라가며 읽는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황동규-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김기택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

사랑방/함순례-아버지/강신용-아버지/이재무

사랑방/함순례 울 아부지 서른, 울 엄니 스물 셋 꽃아씨, 아부지 투덕한 살집만 믿고 신접살림 차렸다는디, 기둥 세우고, 짚과 흙 찰박찰박 벽 다져, 오로지 두 양반 손을 집칸 올렸다는디, 부쳐먹을 땅뙈기가 없는 기라 내사 남아도는 게 힘이여 붉은 동빛 박지르며 집을 나서면 이윽이윽 해가 지고, 어..

채송화/송찬호-채송화/박후기-채송화/임영조-채송화/고광헌-채송화/윤효

채송화 송찬호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커다란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수염으로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

애월涯月 / 정희성 - 애월 / 이수익 - 애월 / 엄원태

애월涯月 정희성 들은 적이 있는가 달이 숨쉬는 소리 애월 밤바다에 가서 나는 보았네 들숨 날숨 넘실대며 가슴 차오르는 그리움으로 물 미는 소리 물 써는 소리 오오 그대는 머언 어느 하늘가에서 이렇게 내 마음 출렁이게 하나 -시집『시를 찾아서』(창비시선 2009) --------------------------- ..

개기일식/서안나-입술/허수경-젖이라는 이름의 좆/김민정

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

아름다운 도반/이화은-겨울강가에서/안도현

아름다운 도반/이화은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욱도 반가워 그 발자욱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욱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에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발자욱 꺾어가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욱 몇 떨..

개기일식/서안나-입술/허수경

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1-12월호 2010-08-14 / 아침..

강/ 박남희-강/황인숙-강/박기동-강/도종환-물/임영조-강가에서/고정희

강 박남희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직 전하지 못한 편지가 있습니다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를 저는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 시집『고장 난 아침』 (애지, 2009) --------------------------------------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