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보름달/이진명-보름달/정대호-보름달/박창기

보름달 ―전화 이진명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명절인데 엄마는 전화도 못하나 거긴 전화도 없나 전화선 안 깔린 데가 요새 어디 있다고 무선전화 세상 된 지가 벌써 언젠데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하나 성사 못 시키는 느려터진 보름달 둥글너부데데한 지지리 바보..

비빔밥/고운기-시 비빔밥/김금용

비빔밥/고운기 혼자일 때 먹을거리 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러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어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일 줄 안다 나를 잡수..

밥/장석주-밥/황규관-긍정적인 밥/함민복-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 게 아니란다/고정희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

저녁 여섯시/엄원태-저녁 6시/이재무-비 내리는 오후 세 시/박제영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저녁 여섯시/엄원태 1 네가 한 풍경을 바꾸는 동안 나는 액자 속과 탁자에도 있었고 걸레 빤 물과 먼지들 속에도 있었다 하루가 제 얼굴을 비비는 시간, 봄 들녘, 타오르던 아지랑이 하마 저물어 식고 놀던 동네 아이들, 배고파 앞이 캄캄해지는 시간 강변마을 해사한 흰 꽃들이 조용히 입 ..

반성 608-반성 743-숲 속에서-아름다운 폐인/김영승

반성 608/김영승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주신다. (『반성』. 민음사. 1987)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

버려진 것들은 살아온 날을 묻지 않는다/김용인-텔레비전/최승호

버려진 것들은 살아온 날을 묻지 않는다/김용인 햇빛에 나를 널어 말린다 달빛에 나를 널어 말린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다 눈이 내리면 눈을 맞는다 등받이 달아난 의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뽀오얀 시간 한꺼풀 뒤덮여 있다 이따금 풀벌레가 앉았다 간다 발목 근처엔 소름소름 검거나 푸른 버섯이 돋았다 놀라지 마라 나도 한때는 꽃이었다 하루종일 침묵을 상영중인 TV 바람소리를 연주하는 줄 끊어진 기타 비로소 속도의 마법에서 풀려나 가슴 한가운데 해바라기를 키우는 폐타이어 서랍을 활짝 열어젖힌 채 문갑은 이제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버려진 것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소음조차 에돌아 가는 곳 우물속 같은 고요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살아온 날들을 묻지 않는 건 이곳의 불문율이다 숨가뿐 날은 모두 나를 통과해 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손택수,박문혁,유하,진은영/김연진(동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손택수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

화살/고형렬-화살/고은-내가 화살이라면/문정희

화살/고형렬 세상은 조용한데 누가 쏘았는지 모를 화살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화살은 단단하고 짧고 검고 작았다. 새 깃털 끝에 촉은 검은 쇠. 인간의 몸엔 얼마든지 박힐 것 같다. 나는 화살을 들고 서서 어떤 알지 못할 슬픔에 잠..

수묵 산수/김선태-천수만 가창오리/김종열

수묵 산수/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

외딴 유치원/반칠환 -윤사월/박목월

외딴 유치원/반칠환 아랫목에 밥 묻어 놨다-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 외양간에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