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림자 /이순희 산 그림자 이순희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다 자신의 비밀과 허물을 뱀처럼 벗어놓고서 다행히 그에겐 모든 걸 숨겨줄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런 그가 깊고 조용한 그녀를 보는 순간 그동안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다 풀어놓고..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홰치는 산/문인수 홰치는 산 문인수 방올음산 북벽으로 서 있다 그 덩덜미 시퍼렇게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묵묵히 버티고 선 산 아버지, 엄동의 산협에 들어갔다. 쩌렁쩌렁 참나무 장작 찍어 낸 아버지 흰내 그 긴 물머리 몰고 온 것일까 첫 새벽 홰치는 소리 들었다 집 뒤 동구 둑길 위에 아버지 우..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산에가는이유,의역사 /박의상 산에가는이유,의역사 ―박의상(1943∼) 산에 갔지 처음엔 꽃을 보러 갔지 새와 나무를 보러 갔지 다음엔 바위를 보러 갔고 언제부턴가 무덤을 보러 갔지 그리고 오늘부터는 저것들 보자고 산에 가지 산 아래 멀리 저어기 강가의 새 도시에 우뚝 선 것들, 번쩍이고 으르렁대는 세상에, 저 예..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겨울산/황지우 겨울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시집『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1990)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산이 가는 곳/박판석 산이 가는 곳 박판석 사람들은 오르고 산은 내려온다 물과 나무와 바위와 짐승이 사이좋게 내려오는 저 아래편 골짜기 사람들은 산이 하늘로 치솟는다고 말하지만 산을 따라 내려가 보면 제 몸을 헐어 골짜기로 모이는 숲과 물길 낮은 곳을 향해 흙으로 돌아가는 산의 숨소리가 들린다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산벚나무에 이력서를 내다 /최정란 산벚나무에 이력서를 내다 최정란 잎 지으랴 꽃 빚으랴 바쁜 나무 봄이 주문한 꽃들의 견적서를 쓰고 잎들의 월간 생산 계획을 짠다 가장 알맞은 순서도에 따라 발주 받은 꽃들을 완성한다 납기에 늦지 않게 꽃들을 싣고 좁은 가지 끝까지 빠짐없이 배달하려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겨울산/박노식 겨울산 박노식 백지 한 장 머리맡에 누이고 시를 얻어 잠이 들었다 꿈결에 여러 번 손이 가고 뒤척였다 늦은 아침 마당에 나와 먼 산을 둘러보다 울컥하여 다시 방에 들었다 죽은 말을 솎고 또 몇은 비틀어서 여기저기 걸어놓았다 검은 종이를 들어 터니 깨알 같은 글자들이 우수수 떨어..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8.02.23
산이 나를 들게 한다 / 천양희 산이 나를 들게 한다 천양희 높은 산은 오른다 하고 깊은 산은 든다고 하네 오른다는 말보다 든다는 말이 좋아 산에 든 지 이십 년이 넘었네 산은 오래 들어도 처음 든 것 같고 자주 든 길도 첫길 같은데 나는 나이 들어도 단풍 든 것 같지 않고 눈에 든 풍경도 절경이 아니네 높은 자리에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4.09.03
큰 산에 올라보면 / 황진성 큰 산에 올라보면 황진성 큰 산에 높이 올라 보면 안다 나무는 모두 계곡을 굽어보고 있다는 것을 깊은 계곡일수록 나뭇잎을 켜켜이 담아두고 그 은밀한 장소를 살짝 열어둔다 이두박근을 실룩이며 드나드는 다람쥐 품어주고 오소리도 호기심에 눈을 껌뻑이며 다녀가고 밤이면 퇴근한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4.09.03
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다 / 손세실리아 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다 손세실리아 산을 내려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늙은 나무의 흰 뼈와 바람에 쪼여 깡치만 남은 샛길이 세상으로 난 출구를 닫아걸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위가 침침하지만 곧 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들겠지요 그렇다고 산에 갇힐까 염려는 마세요 설..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201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