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꼬막/박형권 털 난 꼬막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 열어준 사람은 오촌 당숙이시고 끝까지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시를♠읽고 -수필 2018.05.10
어머니/박성우 어머니 박성우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 시를♠읽고 -수필 2017.12.19
새벽의 낙관/김장호 새벽의 낙관 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 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 시를♠읽고 -수필 2017.11.23
노숙 /김사인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 시를♠읽고 -수필 2017.11.08
충남 당진 여자 /장정일 충남 당진 여자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스물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충남 당진 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 시를♠읽고 -수필 2017.10.26
공갈빵/손현숙 공갈빵 손현숙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하던 봄날, 우리 엄마 갑자기 내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 붙은 듯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저쯤 우리 아버지,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오다가 우리하고눈이 딱 마주친 거지 "현숙이 아버……" 엄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 시를♠읽고 -수필 2017.10.10
소주병 / 공광규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ㅡ시집『소주병』(실천문학.. 시를♠읽고 -수필 2017.08.09
그리운 악마/이수익 그리운 악마 이수익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 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 시를♠읽고 -수필 2017.08.01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집『망향』(문.. 시를♠읽고 -수필 2017.07.26
목련꽃 브라자 /복효근 목련꽃 브라자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 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시집『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2005) -----------------.. 시를♠읽고 -수필 2017.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