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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참꼬막 2 /선안영

벌교 참꼬막 2 선안영 시간이 몰아가는 죽음은 딱 한 방향 함부로 열탕 지옥을 휘저어서는 안 된다 순한 양 떼를 살살 몰고 가듯 같은 방향으로 저어 기승전결 비장한 결말을 앞둔 반전의 지점에서 건져진 꼬막, 두 손 모아 공손히 삶은 꼬막을 까다 보면 꽝꽝 닫혔던 문들이 열리는 소리, 인생의 만능키를 찾은 듯 막장 끝에 세상이 열리는 소리 딸각 딸각 어둠 속 별빛 몇 촉 자란 눈동자를 만난다 ㅡ 『열린시학 』(2022, 가을호)

창가에 서서 /안규례

창가에 서서 안규례 장맛비 온다 진종일 끊어졌다 이어지는 굵은 빗줄기 아파트 마당은 시절을 만난 듯 초록잎이 장악을 하고 봄날 햇살처럼 누군가 올 것 같아 괜스레 베란다 유리창 긋는 빗물 닦으며 간간이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시장기는 슬슬 밀려오고 한 시절 지겹도록 먹었던 빗줄기 같은 국수나 만들어 볼까 냉장고 속 이제나저제나 나오길 기다리는 애호박 숭숭 썰고 양념장 끼얹어 먹다 보면 조금은 외로워졌던 시간들 삶은 국수발처럼 부드러워지겠지 얽히고설킨 마음도 가지런해지겠지 밖에는 여전히 비, 비, 비… ―계간『詩하늘 107』(2022년 가을호)

아버지의 미소 /이광

아버지의 미소 이광 초로의 한 사내가 휠체어 밀고 간다 분수대 부근에서 쉬어갈 듯 멈춰 선다 뺨 위로 흐르는 땀엔 눈물도 섞였을까 휠체어 탄 청년은 목을 전혀 못 가눈다 한쪽으로 처진 목을 반듯하게 세운 손길 힘차게 치솟는 물줄기 잘 보이게 돕는다 분수대 더 가까이 휠체어가 옮겨진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보라를 느꼈을까 청년의 눈빛을 읽는 사내 얼굴 환하다 ㅡ 『좋은시조 』(2022, 가을호)

곰 /손진은

곰 손진은 도서관에서 나와 잠깐 쉰다는 게 공원 벤치에 큰대자로 곯아떨어진 사내 행인들 인기척 담배 연기에도 기침 한 개비 없이 이마에 땀 흥건해질 때까지 자다 천둥 번개가 후려쳐 한참을 멍하니 앉은, 어느새 몸속에 덩치 큰 곰이 들어와 앉은 사내 그래도 그는 좋다, 초록 외엔 아무도 없는 공원 빗방울만 후두둑 몸을 깨우는 숲이! 무얼까? 곰, 그쪽과 맞닥뜨린 세월도 없는데 긴 공용의자, 그 노상침실에 그를 눕히고 비끄러맨 건, 그 사이, 생로병사 네 글자가 우지끈 끊어지며 마디마디 곰의 사지를 이어준 건, 그렇담 어떻게 덩치 큰 저 곰을 끄집어내나? 풀잎부터 가지 열매 들짐승 잡식의 그를 무슨 힘으로? 일단 오늘은 열람실까지 놈 잘 밀어넣고 착해진 몸으로 야생의 열맬 훑어먹는 걸 지긋이 바라보다가 슬슬..

마음이 가난해지면 /정호승

마음이 가난해지면 정호승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도 나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마음이 가난해지면 비 온 뒤 지옥에 꽃밭을 가꾸기로 했다 채송화 백일홍 달맞이꽃을 심어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꽃 한 송이 피우기로 했다 감나무도 심어 마음이 배고플 때마다 새들과 홍시 몇 개는 쪼아 먹기로 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의 봄날도 나의 것이다 지옥에 봄이 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죽어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기에 지옥에 텃밭도 가꾸기로 했다 상추 고추 쑥갓 파 호박을 심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싸 먹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가난한 흙이 되기로 했다 흙을 뚫고 나온 풀잎이 되기로 했다 ㅡ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 2022)

포토클램 + Pro 42NS + PC-69-UP3 삼각대로 - 비가 와서 집에서 처음 삼각대로 찍어 본 연습 사진

포토클램 + Pro 42NS + PC-69-UP3 삼각대로 - 비가 와서 집에서 처음 삼각대로 찍어 본 연습 사진 PTC-2441P + Pro 42NS + PC-69-UP3 포토클램 (주)줌카메라문의하기 PTC-2441P + Pro 42NS + PC-69-UP3 포토클램 수량 : 1개 / 주문번호 : 3821994651 844,780원(105,220원 할인) 포토클램 삼각대 놓고 - 비가 와서 집에서 처음 찍어 본 사진

해바라기 /손진은

해바라기 손진은 몰랐다 하늘 아래 끝도 안 보이는 해바라기들이 피고 진다는 걸 제 생을 피우느라 울고 웃고 찡그리고 벅찼을 사내들 노오란 하늘 떨려나갈 때까지 까만 씨앗 저무는 하루 건사하는 걸 기도 흉내만 내며 벙긋벙긋 웃는 가녀린 줄기였다가 제법 그 피가 차오르고 근육이, 뼈가 단단해지는 걸 누가 루마니아 평원에서 찍어보낸, 세상 눈알 다 모아놓은 둘레로 불을 지고 흔들리는 족속 보고서야 알았다 사내라면 누구든 수천 평 씨앗 뿌리고 먹여 살리는 멀쑥한 꽃대 물 샐 틈 없는 피와 근육, 뼈 거느린 둥근 얼굴에 검은 씨들 앉히고 웃고 울고 찢기고 넘어지며 등 굽은 박수나 치다가 언 발 바람 든 뼈로 구름 덜컹이는 창문 곁에 눕거나 종소리도 없이 목 꺾인 줄기가 우수수수, 저문 언덕 넘어가는 것을 해바라기..

카테고리 없음 2022.10.03